Skip to content
김민식 - 생각과 행동의 기록
External Links

2020년 7월 회고

, 회고5 min read

생각들

인간(개인과 사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강연을 하는 과정에서, 친구와의 대화에서 반복되어 나온 질문과 나의 대답들.

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장 고전적인 답은 “사랑”이다. 예컨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표현된 바와 같이. 하지만 지금 와서는 나에게 그렇게 깊은 울림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에게는 톨스토이보다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더 매력적이고 보다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 “You see, we shared a vocation. It wouldn't have been necessary. (...) But, I will say, he certainly sustained the illusion with a marvelous grace.“ 인간은 환상같은 사명을 우아하게 지켜낸다.

사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건 시대에 따라 달라진 것 같다. 톨스토이의 사랑이 종교에 기반한 것 처럼, 한 때 종교가 지배적이었다. 요즘은 자본인것 같다. 과거에 종교의 이름으로 못 하는 것이 없었던 것 처럼, 요즘은 자본의 이름으로 못 하는 것이 없으니. 사회는 항상 변화하므로 계속 이럴것 같지는 않지만, 과연 자본의 힘이 약해지는 것이 가능하긴 할지 모르겠다. 내가 중세에 살았으면 종교가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이 다음 세계는 어떤 세상일까?

포기의 미학

가장 높은 가치를 얻는 길은, 가치가 낮은 것들을 전부 포기하는 것이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아무리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한계를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선택과 집중하는 것 뿐이다. 예컨대 워렌 버핏이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일 25가지를 적어보라. 그 중 5개를 선택해서 집중하고, 나머지는 피해다녀라.”같은 말을 한 것 처럼. 하지만 이것은 다음 세가지 이유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 뭐가 나에게 더 가치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기 어렵다.
  •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인간은 매몰비용에 심리적으로 취약하다.
  •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 문제에 익숙해져 있을 수록 부지런한 비효율이 발현한다.

믿음

사람은 미지의 것을 무서워한다. 하지만 사람은 전지적일 수 없고, 미지의 영역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그런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은 그 미지의 영역을 믿음으로 채워넣는다. 이것은 마치 논리의 전제와도 같아서, 논쟁의 여지가 되지 않고, 더이상 그 무지에 의한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된다. 예컨대 옛날에는 태양이 왜 떠오르는지 몰랐기 때문에 태양이 떠오르는 현상을 믿음으로 만들었다. 그래야 내일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이겨낼 수 있으니까. 나는 무엇을 믿고 있을까?

  • 나는 표리부동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 나는 개인의 행복에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 나는 아름다움 것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 나는 유희에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 나는 행동만이 실존하는 유일한 의미라고 믿는다.
© 2024 by 김민식 - 생각과 행동의 기록. All rights reserved.
Theme by Leko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