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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 생각과 행동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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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회고

, 회고12 min read

기억에 남는 주제별로 1년을 돌아보았다.

CTO로 일한지 만 1년이 넘었다. 이제는 (아주 조금) 이게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인지 알 것 같다. 내가 한참 멀었다는 것은 잘 알겠다.

클린ㅁㅁ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다
나는 클린 코드, 클린 아키텍처만 있으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코드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올해들어 진정으로 깨달았다. 코드를 짜는 사람도, 환경도, 문화도 소프트웨어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 아무리 좋은 코드와 아키텍처를 설계해봤자 사람과 문화가 좋지 못하면 결국 높은 품질에 도달할 수 없다.

올해 중반까지 이 사실을 간과하고, 우리 팀의 퍼포먼스를 늘리기 위해 클린코드와 클린아키텍처에 집착해서 파고들었던 적이 있었다. 지인과 커피를 마시다가 ‘네 팀의 병목은 코드에 있는 게 아닌것 같다’는 말 한마디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동료를 돕는 일만 하기
점점 실무를 하는 시간을 줄이다가, 이제는 완전히 실무를 안 하게 되었다. 최소한 내가 단독으로 태스크를 맡는 일은 없다. 처음에는 어느정도 실무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여기에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코딩하는게 무척 재밌어서, 한번 코딩을 시작하면 너무 몰입해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감지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에너지를 많이 쏟는다. 그래서 다른 동료들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너무 집중하는 것 같아서 방해하기 미안하다던지, 혹은 메신저로 호출했는데 내가 그걸 전부 씹는다던지, 아니면 코딩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버려서 기진맥진한다던지.

내가 어려운 테스크를 가져감으로써 동료들이 도전하고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된다. 태스크를 분배할 때 퍼포먼스를 고려한다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난이도가 높은 일을 우선적으로 가져가게 된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동료들의 도전할 기회를 뺏고, 컴포트존에 빠지게 하여 성장을 더디게 만든다.

그래서 팀 전체 회고를 거치며 내가 태스크에 할당되지 않도록 하고, 태스크에 개입한다면 오직 페어프로그래밍의 형태로만 참여하도록 규칙을 세웠다. 지금까지의 팀 피드백은 긍정적이다.

대화 자주 하기
내가 원체 말이 없는 사람이라, 강제로라도 하기 위해 1on1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졌다.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코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것과도 연관이 있는데, 나는 내가 짠 코드보다 팀원과 나눈 대화가 올해 더 큰 임팩트를 냈다고 생각한다. 아직 내가 대화 자체를 잘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만한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혼자의 힘으로는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잘 쉬기
잘 쉬는건 사실 아직도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한다던지, 여행을 한다던지, 술을 마신다던지, 게임을 한다던지 여러가지를 해봤지만 결국 방법의 문제는 아니고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만을 깨달았다. 환경이 바뀌어야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 내년에 목표한 대로 팀이 투자를 잘 받으면 괜찮아질까?

지금까지 시도했던 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정신을 쉬게 만드는 길은 자전거를 타는 것이었다.

소진
크고 작은 소진의 위기를 겪으며 이제 정말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기를 겪을 때 마다 잠깐의 휴식 처방으로 문제를 극복하곤 했다. 하지만 딱히 지속가능한 해결방법은 아니었다. 내 문제는, 내가 워낙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라 일단 일을 시작하면 그 자극에 취해서 내 체력이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밖이 무척 추운데 눈싸움이 재밌어서 감기에 걸릴 줄 모르고 열심히 뛰어노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래서 요즘엔 의식적으로 일찍 퇴근하려고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잘 자각하는 것이겠지만.

배움

점점 알던 사람만 만나고, 알던 기술만 쓰게 되는 것 같아서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원래 연말쯤엔 코로나가 종식될 줄 알아서(...) 모각코도 진행해보려고 했었다. 올해엔 아쉽게도 못했지만, 내년엔… 어쩌면…

트위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쓴 생각을 접하기 쉬운(..내 생각에) 트위터를 시작했다. 확실히 참고가 될 글이 많았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다양한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이 최고의 학습 전략이다.

AC2 Patch
김창준님이 운영하시는 AC2 과정에 참여할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보다 작은 규모로 AC2 Patch 워크샵이 열려서 참가했다. 워크샵에서 배운게 아주 많고 유익해서, 끝나자 마자 바로 팀으로 돌아와서 워크샵을 재현하기도 했다. 한번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다양한 주제로 Patch가 열려서 한개를 더 신청했다. 진작에 정규과정을 신청해볼걸 하는 생각이 든다.

오픈소스
왠지 올해엔 react-native, firebase sdk같은 오픈소스 레포에 PR을 날릴 기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훌륭한 메인테이너로부터 코드리뷰를 받을 수 있었고, 좋은 코드리뷰란 무엇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잘 리뷰하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취미

한 해에 쓸 수 있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일에 쏟다보니 취미는 그다지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내년에는 음악도 많이 들으러 다니고, 사진도 많이 찍으러 다니고 싶다. 지금 카메라에 언제 넣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필름 한 통이 아직도 반도 안 찍은 상태로 남아있다.

자전거
그나마 자전거는 많이 탔다. 나에게 자전거는 명상과도 같아서, 육체와 정신 건강을 모두 지켜주는 유익한 취미다.

원래 타던 출퇴근용 자전거로 서울-부산 국토종주를 다녀왔다. 원래부터 투어링 자전거였기에 국토종주는 정확히 이 자전거의 목적에 맞는 활용이라고 할수 있겠다. 대신 평소에 달고 다니던 랙과 페니어백은 다 떼어내고 새들백과 작은 핸들바백으로 최대한 가볍게 짐을 꾸렸다. 그렇게 떠난 국토종주길은 경기도를 벗어나서부터는 대도시 근처에 진입하지 않는 한 도로 주변으로 그저 드넓은 땅과 산 그리고 강이 펼쳐져있을 뿐이었다. 바람 소리와 새 소리, 그리고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들리는 그 시간들이 평화로웠다.

아지트
친구들과 아지트를 만들었다. 우리가 안 쓰는 시간에는 대관을 주고 월세정도의 유지비용은 버는 것을 목표로. 각자가 자기 취향대로 물건을 갖다두고 꾸미니까 정말 상상 이상으로 아늑해져서 제2의 집같이 느껴졌다.

커피
핸드드립만 주구장창 마시다가, 올해 처음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샀다. 여전히 드립을 더 많이 마시고 또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드립으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커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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