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도어락
— 소설 — 10 min read
요즈음 집에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가 매일같이 현관문을 열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집 현관문에는 디지털 도어락이 달려있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문을 열게 되어있다. 비밀번호는 유난히 길고 불규칙해서 무작위로 알아맞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디지털 도어락은 꽤 유명한 회사의 것이므로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집 현관문은 비밀번호를 알고있어야만 열 수 있고, 어느 누구도 우리집 현관문을 함부로 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이상함을 눈치챈 것은 어느날 아침 집을 나설 때 바깥쪽 도어락의 키패드 커버가 열려있음을 발견한 때였다. 우리집 도어락은 평소에 키패드가 커버에 덮혀있고,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커버를 열어야한다. 나는 항상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커버를 닫아두는 습관이 있다. 그러니 커버가 열려있다는 것은 나 이외의 누군가가 이 도어락에 손을 댔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그냥 한밤중에 취객이 집을 잘못 찾아왔다가, 문을 열려고 하던 때에 실수를 깨닫고 급히 돌아갔겠거니 하는 식으로 가볍게 넘어갔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다음날도, 그리고 또 그 다음날도 연이어 이어지자 영 심상치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집 도어락의 작동음은 아주 작아서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비밀번호가 틀렸을 때 나는 경고음조차 작다. 그러니 내가 집에 있더라도 안쪽 방에 들어가있다던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던지, 아무튼간에 청각을 현관문에 집중하고 있지 않는 이상 누군가가 도어락의 커버를 열고 버튼을 눌러대도 나는 그 상황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일을 쉬는 날 하루를 잡아서 밤에 누군가가 도어락에 손을 대지 않는지 현관앞에서 죽치고 앉아 지켜보기로 했다. 매일같이 이어지던 그 현상은 그날 밤도 예외없이 발생했다. 그리고 나는 직접 내 귀로 확인했다. 누군가가 한밤중에 현관문 너머에서 디지털 도어락의 커버를 열어 버튼을 누르고 있음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공포를 느낄 것이다. 매일 밤마다 알수 없는 사람이 현관문을 열려고 도어락에 손을 댄다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언젠가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런 일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런 일을 예상했냐고 묻는다면, 설명하기 곤란하다. 어쨌든 나는 설명하기 곤란한 이유로 언젠가 누군가가 우리집에 무단으로 친입할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비밀번호가 유난히 길고 복잡한 것은 이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우리집 현관문을 열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일단 그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내서 잡아내는게 가장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역시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 우리집을 수사하게 할 수는 없다. 경찰과 엮일 수는 없다. 사실 이것도 위에서 언급한 '설명하기 곤한한 이유'와 연관이 있는데, 아무튼 나는 경찰의 도움 없이 그 사람을 잡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문 밖에 CCTV를 설치한 것이다. 일단 그가 내가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어쩌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일 수도 있다. 아무튼 상대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야 제대로 준비를 할 수 있을테지. CCTV를 단 바로 그날 밤에도 역시 그가 찾아왔다. 나는 그렇게 사건 현장의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체격을 보건대 남자인 듯했고, 혼자였다. 복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남의 집에 침입한다는 긴장감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좀더 그의 행동을 관찰하기로 했다. 현장을 덮쳐 그를 붙잡는다면 당장의 위험은 없어지겠지만, 어쩌면 그는 앞으로 우리집에 닥쳐올 위험의 서곡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현장을 덮쳤을 때 그를 완벽히 제압할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절대 우리집 문을 열지 못할 것이므로 나는 그의 반복되는 행동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단서를 찾아내려 했다. 그리고 곧 나는 그의 행동에 좀 더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도어락의 커버를 열어놓은 채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문을 열려는 나름대로의 시도를 하고 다시 도어락의 커버를 닫아놓았다면 나는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있음을 눈치채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부러 자신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겨놓는 것일까? 또 이상한 점은 그가 단 하나의 비밀번호만을 시도해보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가 어떤 방법으로든 비밀번호를 추측하고 있는 것이라면 한번에 여러가지의 경우를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텐데도 언제나 단 하나의 비밀번호만을 눌러보고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가장 이상한 점은, 그의 방문시간이 불필요할 정도로 규칙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항상 자정이 되자마자 나타났다. 오차는 1분이 채 되지 않았다.
이쯤되자 나는 오히려 그에게서 위험이 아니라 호기심을 느끼게 될 지경이었다.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도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그를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날 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문밖 덤불에 몸을 숨기고 자정을 기다렸다. 역시 자정이 되자마자 그가 나타났다. 나는 준비한 물건을 손에 쥐고 뛰쳐나가 그에게 일격을 가해 넘어뜨렸다. 그는 황금히 일어나려다 내 손에 쥐어진 물건을 보고 동작을 멈췄다. 저항을 포기한 것인지 바닥에 눕혀진 상태에서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주의깊게 손을 뻗어 그의 복면을 벗겼다.